사고 史庫

사고  史庫

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공적인 기록과 또 중요한 사적인 기록을 보관했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의 태조실록(太祖實錄), 정종실록(定宗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은 2벌 등사(謄寫)하여 춘추관(春秋館)과 충주(忠州) 사고에 보관하였다. 1445년(세종 27)에 2벌을 더 베껴서 전주(全州)와 성주(星州) 사고에 보관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부터는 활자로 인쇄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사고에 보관하였다. 임란왜란(壬辰倭亂) 당시 다른 사고의 실록은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전주 사고의 것만 보존되었다. 전주의 사족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이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明宗實錄)까지 804권과 태조의 어진(御眞) 및 사고의 서적을 내장산(內藏山)으로 운반하였다가 조정에 인수하였다. 이것을 임진왜란 와중에 해주(海州), 강화(江華), 묘향산(妙香山)을 거쳐 다시 강화로 옮겨 보관하게 되었다.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 3월 사이에 실록 804권을 다시 간인(刊印)하여 3부를 제작하였다. 여기에 마지막 교정본(校正本)을 제본한 것과 전주 사고본 원본(原本)을 합하여 5부를 춘추관, 강화 마니산(摩尼山)[전주 사고본 실록], 경북 봉화(奉化) 태백산(太白山), 평북 영변(寧邊) 묘향산, 강원도 평창(平昌) 오대산(五臺山)[교정본校正本]에 보관하였다. 이후 춘추관에 소장되었던 실록은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으로 소실되고, 묘향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은 1633년(인조 11)에 전북 무주(茂州) 적상산(赤裳山)으로 이전하였다. 마니산에 보관하였던 실록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청군(淸軍)에 의하여 크게 파괴되었던 것을 현종(顯宗) 연간에 파괴된 부분을 등사하여 보수하였다가 1678년(숙종 4)에 강화 정족산(鼎足山)에 사고를 설치하고 이전하였다. 인조 이후의 실록은 4부를 인쇄하여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에 보관하였다.

1908년 이후 사고의 자료들은 제실(帝室) 도서로 편입되었다가 정족산 사고와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1929년 규장각(奎章閣)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로 이관, 경성 제국 대학(京城帝國大學)을 거쳐 서울 대학교 규장각으로 이관되었다. 이 중 태백산본은 국사 편찬 위원회에서 실록을 영인할 때 그 저본으로 썼으며, 현재는 국가 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 적상산 사고본 실록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으로 가져갔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일본인들이 도쿄 제국 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가져갔는데, 관동(關東) 대지진(大地震) 때 거의 다 타버려서 현재 도쿄 대학교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극히 일부가 남아 있다. 도쿄 대학교에 보관되었던 오대산 사고본은 2006년 7월에 규장각에 반환되었다.

식별번호 : AD-PM00002


표제어 : 사고


대역어 : 史庫


정의 및 해설 : 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공적인 기록과 또 중요한 사적인 기록을 보관했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의 태조실록(太祖實錄), 정종실록(定宗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은 2벌 등사(謄寫)하여 춘추관(春秋館)과 충주(忠州) 사고에 보관하였다. 1445년(세종 27)에 2벌을 더 베껴서 전주(全州)와 성주(星州) 사고에 보관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부터는 활자로 인쇄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사고에 보관하였다. 임란왜란(壬辰倭亂) 당시 다른 사고의 실록은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전주 사고의 것만 보존되었다. 전주의 사족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이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明宗實錄)까지 804권과 태조의 어진(御眞) 및 사고의 서적을 내장산(內藏山)으로 운반하였다가 조정에 인수하였다. 이것을 임진왜란 와중에 해주(海州), 강화(江華), 묘향산(妙香山)을 거쳐 다시 강화로 옮겨 보관하게 되었다.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 3월 사이에 실록 804권을 다시 간인(刊印)하여 3부를 제작하였다. 여기에 마지막 교정본(校正本)을 제본한 것과 전주 사고본 원본(原本)을 합하여 5부를 춘추관, 강화 마니산(摩尼山)[전주 사고본 실록], 경북 봉화(奉化) 태백산(太白山), 평북 영변(寧邊) 묘향산, 강원도 평창(平昌) 오대산(五臺山)[교정본校正本]에 보관하였다. 이후 춘추관에 소장되었던 실록은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으로 소실되고, 묘향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은 1633년(인조 11)에 전북 무주(茂州) 적상산(赤裳山)으로 이전하였다. 마니산에 보관하였던 실록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청군(淸軍)에 의하여 크게 파괴되었던 것을 현종(顯宗) 연간에 파괴된 부분을 등사하여 보수하였다가 1678년(숙종 4)에 강화 정족산(鼎足山)에 사고를 설치하고 이전하였다. 인조 이후의 실록은 4부를 인쇄하여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에 보관하였다.

1908년 이후 사고의 자료들은 제실(帝室) 도서로 편입되었다가 정족산 사고와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1929년 규장각(奎章閣)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로 이관, 경성 제국 대학(京城帝國大學)을 거쳐 서울 대학교 규장각으로 이관되었다. 이 중 태백산본은 국사 편찬 위원회에서 실록을 영인할 때 그 저본으로 썼으며, 현재는 국가 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 적상산 사고본 실록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으로 가져갔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일본인들이 도쿄 제국 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가져갔는데, 관동(關東) 대지진(大地震) 때 거의 다 타버려서 현재 도쿄 대학교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극히 일부가 남아 있다. 도쿄 대학교에 보관되었던 오대산 사고본은 2006년 7월에 규장각에 반환되었다.


채택어 구분 : 채택어


시대구분 : 전근대


언어 : 한국어


용어분류 : 전근대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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